「어서 오세요, 쇼군님!」
야에 마사코는 홍백이 엇갈린 무녀복을 입고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복슬복슬한 여우의 귀가 가늘게 떨렸고, 그 아래는 수많은 백성이 우러러보는 얼굴이 있었다.
「돌아오셨군요. 보름 전에 부탁했던 영지 순찰은 어떻게 됐나요?」
「아, 오자마자 업무 얘기를 꺼내는 건 좀 그렇죠. 그럼 늘 그랬던 것처럼 먼저 식사를 하시겠나요? 아니면 목욕을? 그것도 아니면….」
「이봐, 뭐가 『늘 그랬던 것처럼』이야! 전에는 이렇게 상투적인 환영 대사는 없었잖아.」
내 대답에 홍백의 그림자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기운이 별로 없어 보여서요. 그럼 계속해서 요리를 할게요, 오늘 메뉴는 쇼군님이 좋아하는 버터 크랩이랍니다!」
「오예! 버터 크랩, 버터 크랩!」
나, 라이덴 쇼군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오예」!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은 버터 크랩.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은… 윽, 내 삶에는 대체로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다. 행인, 그리고 복슬복슬한 귀에 은은한 목소리를 가진 자.
야에 마사코. 카미나루 다이샤의 궁사, 여우 혈통의 계승자. 「영원」의 권속이자 친구…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호칭을 가진 이, 이나즈마의 백성들에게는 나와 비슷할 정도로 가까이하기 힘들고 짐작할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그런 야에 마사코가 지금 흥미진진하게 버터 크랩이 구워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 더욱 간단히 말해, 나 라이덴 쇼군은 궁사 야에 마사코에게 사육당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이런 삶이 익숙해졌다.
대충 검을 뽑아 아무렇게나 휘둘렀을 때조차도 그녀는 흥미진진하게 박수를 치며: 「어머, 착하기도 해라. 정말 착한 아이구나」라고 말하곤 했다. 《라이덴 쇼군으로 환생하면 천하무적이 된다》를 보면서 뭘 먹을라치면, 그녀는 재빨리 맛있는 밀크티와 케이크를 내오곤 했다. 그녀는 마치 영원을 지키듯, 모든 번뇌의 가능성을 내 시선에서 알뜰히 지워버렸다. 나에게 있어, 그녀는 마치 전설의 여우 신선처럼 나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버터 크랩 다 됐습니다~ 그럼 먹기 전에, 다시 그 문제로 돌아가죠. 영지 순찰 업무는…」
마사코는 돌아서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버터 크랩을 들고 왔다. 방 안 가득 향긋한 냄새가 풍겼지만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게 엉망이 된 오늘 기분의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듯, 내 세계는 마사코와 다른 사람들로 나뉜다.
마사코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나를 볼 때 전부 같은 반응을 보인다. 곧장 공손하게 땅에 엎드려서 날 「쇼군님」이라고 불렀으며, 내가 멀리 간 후에야 다시 길게 숨을 내쉬고 일어서곤 했다.
그 사람이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 아버지, 누군가의 연인이거나 누군가의 영웅, 누군가의 상사, 또는 누군가의 하인이든 내 앞에서는 모두들 같은 표정을 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쇼군님에 대한 존경과 경외라고 얘기한다.
다만 그들이 모르고 있는 건, 나 역시 그런 표정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두려워할 것이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당신에게만 전부 같은 표정을 보인다면 말이다.
그런 이유로 난 마사코를 이렇게 의지하게 된 것이다.
또한 그런 이유로 나는 마사코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해낼 수 없는 일이라 해도, 그녀가 업무를 위해 밖에 나가라고 하면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그 수천, 수만의 표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건 사실이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마주할 수도 없었다. 그들과의 만남을 피할 수만 있다면 쓸모없는 쇼군이라고 불려도 아무 상관 없었다.
하지만, 기꺼이 쓸모없는 쇼군이 된다 해도 마사코의 문책만은 피할 수가 없었다.
「말이 없으시네요, 쇼군님? 설마… 오늘도 천수각 대문만 나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저녁이 다 돼서야 돌아오신 건 아니겠죠?」 마사코의 목소리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이 전혀 들어있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서 그녀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더 망설여진다.
「알겠어요, 푹 쉬세요. 전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버터 크랩은 잊지 말고 다 드세요」 마사코는 고개를 돌려 방을 떠났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늘의 버터 크랩에서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나는 곧 그 답을 알게 되었다.
쇼군님은 천하무적이다. 하지만 천하무적인 쇼군님도 감기에 당한다.
버터 크랩을 먹고 얼마 안 돼 난 침대에 쓰러졌다. 머리가 아팠지만 이건 솔직히 별일도 아니었다. 나에게 더 심각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마사코의 무릎을 베고 그녀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잠에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마사코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전은 차가웠고 이마는 뜨거웠다. 쇼군의 침대맡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해야 할 일로 바빴다. 그녀는 내 여우 신선일 뿐만 아니라, 다이샤의 궁사기도 했다.
어쩌면 아직까지 화를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종일 「오예」만 외치는 나한테 그렇게 많은 정성을 들일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에 젖어있을 수도 있겠지.
그런 의문을 품고 난 깊은 잠에 들었다.
꿈을 꿨다. 꿈에서 마사코는 그 트레이드마크인 미소를 짓고 찻잔을 들고 있었다.
「제가 특별히 배합한 『보랏빛 비구름』이라고 불리는 음료에요. 방금 이도에서 몬드산 통통 연꽃을 좀 사서 거기에 허브를 넣었어요. 이걸 마시면 감기가 금방 나을 거예요」
꿈이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몸을 일으킬 힘이 없었다.
「아, 몸을 일으키기가 힘드신가 봐요, 쇼군님. 그럼, 잠시 실례할게요.」 그녀는 내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나에게 「보랏빛 비구름」을 먹여 주었다.
난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깼다. 방금의 그 광경은 내 상상 범주를 훨씬 벗어난 일이었다. 마사코는 아직도 내가 정무에 소홀한 일로 화가 났어야 하니까.
하지만… 입가는 왜 이렇게 달달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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