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망-
경책산 북쪽의 산봉우리와 골짜기 사이에는 「무망의 언덕」이라 불리는 산이 있다. 이곳은 음기가 가득하고 기이한 소문들이 많은 곳이다.
리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무망의 언덕 숲에는 망자의 영혼이 배회하고 있으며, 이들은 집념을 버리지 못하고 몰락한 옛 마을 주위를 서성이고 고목과 썩은 나뭇잎 사이를 방황하고 있다고 한다. 이 귀혼들은 늘 찾아오는 인간들을 위험한 산길로 끌어들여 벼랑 아래로 떨어지게 만들거나 숨어있는 마수의 한 입 거리가 되게 한다.
「무망」이라는 이름도 여행자가 아무 생각 없이 있어도 산속의 안개처럼 희미하게 서려있는 악령이 달라붙는다며 지어진 것이다.
무구한 산골 주민과 아무것도 모르는 여행자들은 망령의 유혹에 이끌려 알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하늘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안개 가득한 깊은 숲속으로 가게 된다. 무망의 언덕의 망령들은 유혹 수단도 다양하다. 그리워하는 사람, 돌이킬 수 없는 아쉬움, 망자의 목소리와 얼굴, 헤어진 이의 따뜻함, 반목하는 이의 뉘우침 등으로 변해 산을 지나가는 여행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부름을 거절하지 못하고 따라가게 만든다.
그러나 과거 무망의 언덕은 이러지 않았다. 그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망의 언덕에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득히 먼 옛날, 그곳은 평화롭고 시끌벅적하던 마을이었디. 하지만 지금은 속삭이는 영혼들만 남은 폐허가 되었다.
경책 산장의 아이들 사이에는 이런 소문이 떠돈다: 무망의 언덕의 살던 젊은 사람들은 머나먼 곳에 있는 바다 괴수의 노래에 유혹돼 허황된 약속과 유치한 꿈을 좇아 잔잔하게 흐르는 벽수강에 몸을 던져 강물 따라 머나먼 운래해까지 흘러간 뒤 파도와 하나가 되며 모든 기억을 잊었고…그들의 꿈이 바다 괴수의 노래가 되었다.
젊은이들이 하나 둘 떠나가자 결국 나이 든 어른들도 한탄하며 세상을 떠나게 됐다. 이후 마을은 암왕제군이 사는 거대한 항구의 번화함에 가려진 폐허가 되었다.
하지만 단명하는 인간과는 달리 영원히 흐르는 지맥은 모든 걸 기억한다. 샘솟는 원소가 영체가 되어 옛 주민들의 아름다운 꿈과 악몽이 되살아난다. 마치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처럼 이미 떠나간 과거로부터 모든 걸 되돌릴 방법을 찾는듯, 무심한 지맥은 과거 주민들의 모습을 만들어내고 울부짖는 아기, 노인의 한탄, 모든 희극 또는 비극을 되풀이한다. 마치 바다 괴수의 노래처럼 과거를 그리워하는 영혼들을 무의식적으로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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